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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믿을 수 없습니다. 새벽 3시
도서관의 마지막 불빛 아래에서 나는
손을 떨고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
펼쳐진 고대 문헌들 사이로 무언가가
번뜩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가슴이 더 빨리
뛰기 시작했습니다. 3,년 전 사라진
흔적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니 사실이어야만
했습니다. 증거들이 너무나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니까요. 숨이 멋을 것
같았습니다.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역사책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진실이었습니다.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 그들이 실제로는 우리 곁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이것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왜 수천
년 동안 우리는 그들을 찾지 못했던
걸까요?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좋아요와 구독 눌러 주시면 큰 힘이
듭니다. 사라진 유대인의 후손이
한복을 입고 있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도서관 새벽
3시 요나단 브릭스 교수가 또다시
밤을 지세우고 있습니다. 그의 책상
위에는 고대 히브리어로 쓰인 문헌들과
동아시아 고고학 자료들이 뒤섞여 놓여
있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12
지파 중 하나였던 단 지파. 이들은
기원전 800년경 역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성경에서도
유대인의 기록에서도 단 지파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워져
있습니다. 브릭스 교수는 30년간
오직 한 질문에 매달려 왔습니다. 단
지파는 과연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런데 그날 밤 그가 마주한 것은
상상도 못했던 발견이었습니다. 단
지파의 흔적이 발견된 곳은 중동도
유럽도 아닌 머나먼 동방의
한반도였습니다. 하얀 옷을 입고
하늘의 제사를 지내며 스스로를 태초의
자손이라 불렀던 백기민족의 기록
속에서 말입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역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요나단 브릭스 시니어덟살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역사고학과 교수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고대 유대사의
미해결 퍼즐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그를 사로잡은 것은 잃어버린 열
지파의 미스터이었습니다. 기원전
722년 아수르 제국이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후 열파는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브릭스
교수에게는 그중에서도 단 지파가 가장
큰 수습께끼였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지파들과 달리 단
지파는 성경에서도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의
14만 4,명 중에도 예수님의
족보에도 단 지파는 없습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지워 버린 것
같았습니다. 단 지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이 이 질문이 그의
평생 연구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답의 실마리를 동방 끝
한반도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은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브릭스 교수가 동아시아 고대 족속에
관한 논문을 읽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자료를 찾고
있었지만 잘못 클릭한 링크 하나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고조선 초기 기록에
등장하는 백의민족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하얀 옷을 입고
하늘의 제사를 지내며 동방의 산으로
이주했다는 기록이었습니다. 브릭스
교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난 지파의
전통적인 복장 색깔이 바로 흰색이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스스로를 태초의 자손이라 불렀다는
점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아담의
후회를 뜻하는 표현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수가 없다. 그는 더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더욱 충격적인 발견을 하게 됩니다.
브릭스 교수가 발견한 것은 단순한
유사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역사학계를 뒤흔들 수 있는 폭탄과
같은 증거들이었습니다. 고조선 기록에
등장하는 단군이라는 이름부터가
그랬습니다. 단이라는 발음이 히브리어
단 지파의 단과 동일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온 이방의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발견은 따로
있었습니다.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발견된 고대 토템들이 고대 이스라엘의
단 지파가 사용했던 뱀 문양과
놀랍도록 유사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단 지파는 길가의 뱀으로 비유되어
있었는데이 상징이 수천 km 떨어진
한반도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브릭스
교수는 혼란에 빠졌습니다.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기존 역사학의 정서를
완전히 뒤엎는 일이었습니다. 동료들은
그를 믿어 줄까요? 더 나아가
이스라엘 학계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브릭스 교수는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의
발견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단순한
학술적 발견을 넘어서는 문제였습니다.
먼저 종교적 파장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단 지파가 성경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된 이유는 그들이
우상숭배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동방으로
이주해서 살아남았다면 유대교의 근본
교리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었습니다.
학계의 반발도 예상되었습니다. 서구
중심의 역사관에 익숙한 동료들이
동아시아에서 유대인의 흔적을 찾았다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리 없었습니다.
증거가 부족하다. 억지의 석이다라는
비판이 쏟아질 것이 뻔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따로
있었습니다. 만약 자신의 가설이
틀렸다면 평생의 연구가 허상이었다면
그는 학자로서의 명예와 신념 사이에서
깊은 갈등에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들은 너무나
명확했습니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브릭스 교수가
한국의 한 고고학자로부터 받은
이메일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단
지파에 관심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혹시이 사진들이 도움이 될까요?
첨부된 사진들을 본 순간 브릭스
교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발견된 고대
재단의 모습이었는데 그 구조가 구약
성경에 기록된 단 지파의 재단 양식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재단 주변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들이었습니다. 그 위에 새겨진
문양들은 고대 히브리 문자와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야를
뜻하는 히브리어 내 글자와 비슷한
기호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제 확신할 수 있다. 브릭스 교수는
결심했습니다. 아무리 학계에 반발이
있어도 아무리 종교적 논란이 잃어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는
즉시 한국행 항공편을 예약했습니다.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2023년 가을 브릭스 교수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서울대학교 고고학과에 도움을 받아
그는 강원도 산간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광경이었습니다.
3,년 전 재단 유적지 주변에는
여전히 하얀 옷을 입고 천재를 지내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제사 의식은 구약 성경의 번제와
놀랍도록 유사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재물은 반드시 흠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 율법과 같은 원칙이
이상 마을에서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제사장 역할을 하는 마을
어른은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법도라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발견은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고대 제사
노래였습니다. 그 가락과 발음이 고대
히브리어 시편과 유사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아도나이와 비슷한
발음의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브릭스 교수는 떨리는
손으로 모든 것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가설이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는 증거였습니다. 브릭스
교수는 더 확실한 증거를 원했습니다.
그는 서울대일과대학 유전학 연구팀과
협력하여 마을 주민들의 유전자 분석을
요청했습니다. 결과는 한 달 후에
나왔습니다. 연구팀 책임자는 상당히
당황한 표정으로 브릭스 교수를
찾아왔습니다. 교우수님, 이상한
일입니다.이 마을 주민들의 유전자에서
중동 지역 하플로 그룹이 발견됩니다.
일반적인 한국인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유전자 마커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이 유전자 패턴이
현재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특히 고대 북 이스라엘 지역 출신으로
추정되는 유대인들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이고
있어요. 브릭스 교수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문화적 유사성에 이어
이제 생물학적 증거까지 확보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더 신중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급한
결론은 근물이었습니다. 브릭스 교수는
언어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더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서울대 언어학과와
히브리대학교 고대 언어학과가 공동으로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놀라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한국어의 고어
중에서 히브리어와 어원이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 단어들이 발견된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뜻하는 고대 한국어
한님이 히브리어 아도나이와 음성학적
연관성을 보였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지명들이었습니다. 단목, 단수, 단산
등 단이 들어간 지명들이 한반도 북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는데이는 단
지파가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과 일치했습니다. 고대의 제사
용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천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올라 번제 같은
용어들이 히브리어 제사 용어와 유사한
의미와 발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언어학자들은 신중한 입장을 보였지만
브릭스 교수에게는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너무나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단
지파의 동방 이주설이 점점 현실성을
띄고 있었습니다. 브릭스 교수의
연구팀은 한국 전역에서 고고학적
발구를 시작했습니다. 국립중앙
박물관과 한국 고고학회의 협력을 받아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발견은 한반도 북부 고대
유적지에서 나왔습니다. 기원전 8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유물들이
발굴되었는데 그 제작 기법이 고대
근동 지역의 것과 유사했습니다. 특히
주목받은 것은 일곱 개의 팔을 가진
청동 초대였습니다.이는
유대교회 메노라와 구조적으로
유사했지만 동아시아적 요소가 감이되어
있었습니다. 현지 장인들이 자신들의
전통 기법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발견은 토기
파편에서 나온 문자들이었습니다. 고대
히브리 문자와 초기 한글의 중간
형태로 보이는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이는 문자의 전래의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였습니다.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브릭스
교수는 확신했습니다. 단 지파는
분명히 이곳까지 와서 정착했고 현지
문화와 융합하며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브릭스 교수가 예비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학계는 즉시 격렬한 반발을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고고학회는 긴급
회의를 소집했고 서구의 저명한
역사학자들이 반 논문을 쏟아냈습니다.
억지해석의 전형이다. 서로 다른
문명의 우연한 유사점을 과대 해석한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하버드 대학교의 유명한 고대사 교수는
브릭스는 학자가 아니라 소설가가
되었다 하며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종교계의 반응은 더욱 격렬했습니다.
정통 유대교 랍비들은 단 지파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라진 것이며
그들의 후손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신성모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학계도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기원을 외국에서 찾으려는
시도라며 민족주의적 반발을 보이는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브릭스
교수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많은 증거를 수집하고 더 정교한
분석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브릭스 교수는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전 세계의 뜻을 같이 하는
학자들과 국제공동 연구팀을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DNA
분석 전문가, 하버드 대학교의
언어학자, 도쿄의 동화시아사 전문가,
그리고 서울대학교의 고고학 팀이
합류했습니다. 각자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았습니다. 연두팀은 더욱 체계적인
접근을 시작했습니다. 유전자 분석은
더 많은 샘플을 대상으로 확대되었고
언어학적 연구는 컴퓨터를 이용한
빅데이터 분석으로 발전했습니다.
보고학적 발굴도 최신 기술을 동원해
더욱 정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연구팀은 단
지파동방 이주설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혀내는데 집중했습니다. 만약 증거가
부족하다면 그것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철저한 자세가
서서히 학기의 신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24년 봄 연구팀에게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한반도
북부 고대 무덤에서 발견된 석관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석관 내부에서 발견된 것은 기원전
7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두루마리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두루마리에는 고대 히브리어와 고대
한반도 문자가 함께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번역서처럼 한 줄은
히브리어로 다음 줄은 당시이 땅의
언어로 쓰여 있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단 후손이다. 북방으로부터
이곳 동방 끝 땅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찾아 여기에
정착한다라는 문구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두루마리 말미에는 단족장
벤야곱이라는 서명까지 있었습니다.이는
단 지파의 족장 이름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국제연부 팀은 즉시이
두루마리의 진위 여부를 검증했습니다.
탄소 연대 측정, 잉크 성분 분석,
양피지, 재질 검사 등 모든 과학적
검증을 거쳤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진품이 이제 더 이상
추측이 아니었습니다. 단, 지파의
동방 이주는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두루마리 발견 소식이 전 세계에
알려지자 학계는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그동안 브릭스 교수를
비판했던 학자들조차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이처, 사연스 등
세계적인 학술지들이 앞다투어 연구
결과를 개제했습니다. BBC, CNN
등 주요 언론들도 역사를 다시 쓸
발견이라며 연일 보도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잃어버린 형제들을 찾았다 하며
한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선언했습니다.
한국 정부도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는
소중한 발견이라고 환영했습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종교계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단 지파를
저주받은 지파로 여겼던 유대 교계가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된 지파라고
해석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는 브릭스 교수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했고 노벨 재단에서는 인류
역사 이해의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특별상 수상을 검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브릭스 교수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30년간 그를 괴롭혔던
의문이 마침내 해결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브릭스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깊은 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벽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고대 토기 사진들과 히브리어 두루마리
복사보니 나란이 걸려 있었습니다. 참
10년이었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그를
사로잡았던 미스터리가 마침내 해결된
것입니다. 단 지파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동방
끝까지 이주에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그의 발견은 단순한 학술적 성과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인류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였습니다. 문화와
언어, 심지어 종교까지 달라졌지만
그들의 DNA와 전통 속에는 여전히
조상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브릭스 교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단 지파 말고도 다른
잃어버린 지파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의 연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브릭스 교수의 발견은
한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 사이에
전례없는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단순한
외교 관계를 넘어서 형제 민족으로서의
특별한 유대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한국어 학습 열풍이
일어났습니다. 테라비브 대학교와
히브리 대학교의 한국 학과가
신설되었고 한국의 전통 문화를
배우려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늘어났습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형제들의 문화라는 인식이 퍼진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 문화와
히브리어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서울 곳곳에 유대 문화
센터가 설립되었고 한국 젊은이들이
이스라엘로 문화 교류를 떠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두 나라 정부는 형제
민족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과학
기술, 교육, 문화전 분야에서 특별한
협력 관계를 맺기로 한 것입니다.
특히 고고학과 역사 연구 분야에서는
공동 연구소까지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브릭스 교수의 발견은 전 세계
역사학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기존의 서구 중심적
역사관에서 벗어나 동서양을 아우르는
거시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주요
대학들이 앞다투어 고대 민족 이주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옥스퍼드,
하버드, 소르본 등에서 동아시아와
중동 지역의 고대 연결고리를 찾는
연구가 활발해졌습니다. 특히 주목받는
것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유사한
흔적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신토문화 중 일부가
고대 유대 전통과 연관성을 보였고
중국 서북구 지역에서도 고대
히브리어와 유사한 문자들이
발굴되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잃어버린
지파 중 일부가 카슈미르 지역에
정착했다는 새로운 가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팔라샤족도 제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브릭스 교수는 이제 세계적인 석학이
되어 각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항상
같았습니다. 인류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형제들입니다. 문화와 종교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브릭스 교수의 발견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인류
전체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차이속의 통일성이라는
철학적 통찰이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서로 다른 땅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서로 다른 종교를 믿으며 살아온
민족들이 실제로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형제였다는 사실.이는 이는 현대
사회의 갈등과 분열의 새로운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UN에서는 브릭스
교수를 초청해 특별 강연을
요청했습니다. 인류의 공통기원과
평화라는 주제로 열린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적대시하고 갈등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같은 조상의
후손입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종교가 달라도 우리는 형제
자매입니다.이 발견은 종교관대화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뿐만 아니라 동양의
여러 종교들도 공통의 뿌리를 갖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브릭스
교수는 이제 학자를 넘어 평화의
메신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연구실에는 전 세계에서 보내온 감사
편지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브릭스
교수의 발견이 세상에 알려진지 2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그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에 있었습니다. 단 지파의
미스터리는 해결되었지만 더 큰
질문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아홉 지파는 어디에 있을까?
이것이 그의 새로운 탐구
주제였습니다. 이미 세계 각지에서
유사한 흔적들이 보고되고 있었습니다.
인도, 아프간, 범마, 심지어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고대 히브리
문화와 연관된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었습니다. 젊은 연도자들이 브릭스
교수를 찾아와 함께 연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기꺼이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이 연구는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 세계
학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새로 설립된 국제고대
민족 이주 연구소의 소장을 맡은
브릭스 교수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향후 10년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대 규모 발굴과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류의 진정한
기원과 이주 경로를 모두 밝혀내겠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젊은 시절의
열정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25년
봄 브릭스 교수는 한국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학술적 목적이
아닌 개인적인 순례였습니다. 그가
처음 단 지파의 흔적을 발견했던
강원도 산간 마을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마을은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과 연구자들로 북적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얀옷을 입은 마을
어른들이 산 위에서 천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3,년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브릭스 교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시간은 흘러도 진실은
남는구나. 그날 저녁 마을 이장이
그에게 특별한 선물을 건냈습니다.
마을에서 대로 내려온 고대족였습니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단족 후회하는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2장의 말에 브릭스
교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지파들의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브릭스
교수 같은 사람이 나타나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 줄 것입니다. 단 지파의
발견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입니다. 오늘 사연은
여기까지입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따뜻한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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